2 장
나는 손에 들린 수표를 내려다봤다.
작년, 친정집이 무너졌다.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심장마비를 겪었고, 이후 병원비만 매달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
친정에 갈 때마다 새어머니는 늘 같은 말을 했다.
“성우그룹 회장이 네 남편이잖니.”
“재산이 얼마인데.”
“조금만 더 챙겨달라고 하면 안 되겠니?”
그럴 때마다 나는 웃기만 했다.
도준의 것이 어떻게 내 것이 될 수 있을까.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늘 차갑고, 늘 무심했다.
우리 결혼에는 부부라는 이름만 있었지 사랑은 없었다.
그는 아이조차 원하지 않았다.
관계를 가질 때마다 피임약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습관처럼 약병을 집어 들었다.
물 한 모금과 함께 알약을 삼킨 뒤 천천히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오래된 일기장이 들어 있었다.
열여덟 살의 내가 담겨 있는 일기장이었다.
도준을 처음 좋아하게 됐던 날.
그를 바라보며 설레던 날.
혼자만 품고 있던 열렬한 짝사랑.
십 년.
나는 십 년 동안 한 사람만 사랑했다.
눈을 감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하지만 결국 도준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날 밤.
아버지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됐다.
급하게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병원 복도에서 도준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두 번.
열 번.
끝내 연결되지 않던 전화가 겨우 이어졌다.
나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도준 씨, 우리 아빠가—”
하지만 도준은 끝까지 듣지 않았다.
“돈 필요해?”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몇 번 말했잖아.”
“급하면 김비서한테 연락하라고.”
“우서연, 듣고 있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시선이 병실 벽에 걸린 TV에 멈춰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성우그룹 심도준 회장, 제주도 리조트에서 대규모 불꽃 행사 개최]
화면 속 밤하늘은 눈부시게 빛났다.
수천 발의 불꽃이 터졌다.
그 아래에는 휠체어에 앉은 젊은 여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 뒤에는 도준이 서 있었다.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지금 나와 통화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목이 조여 왔다.
“도준 씨.”
겨우 목소리를 냈다.
“지금 어디야?”
잠깐의 침묵.
그는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아직 일 중이야.”
“급한 일 아니면 끊자.”
“김비서랑 얘기해.”
내 목소리가 떨리는 건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여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만큼은 보였다.
너무도 다정해서.
너무도 부드러워서.
나는 처음 알았다.
도준에게도 저런 표정이 있다는 걸.
눈앞이 흐려졌다.
그때 뒤에서 새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도준이랑 연락됐니?”
“도준이 없으면 안 되는 거 알잖—”
말끝이 멈췄다.
새어머니 역시 TV 화면을 본 것이다.
긴 침묵 끝에 새어머니가 낮게 말했다.
“또 제주도구나.”
“참 믿기지도 않는다.”
“그 민서라는 애가 피아노를 쳐서 의식불명이던 도준이를 깨웠다니.”
“설령 그렇다 해도 이건 아니잖아.”
“네 생일도 기억 못 하는 사람이면서…”
목소리가 점점 떨렸다.
하지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지금 우리 집 형편이 그저 이 정도였으니까.
“서연아.”
“그래도 도준이랑 싸우면 안 된다.”
나는 말없이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도준과 싸운다니.
그럴 자격조차 없었다.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가.
껍데기뿐인 결혼을 유지하는 내가.
무슨 권리로 그를 원망할 수 있을까.
나는 TV 속 불꽃놀이를 바라봤다.
밤하늘이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저 정도 하려면 돈 많이 들었겠네.”
새어머니는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나를 바라봤다.
나는 시선을 내린 채 김비서 번호를 눌렀다.
